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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몽상가의 나흘밤, 인생을 완성하는 예술이란 평가

by shupunk 2025. 5. 24.

1. 몽상가의 나흘밤 소개

세계적인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백야를 원작으로 각색한 영화 몽상가의 나흘밤은 제24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 부문 초청작이자 제2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수상작입니다. 재개봉으로 관객들과 다시 만나게 되는 특이한 영화입니다. 삶의 모호함은 눈에 드러나지 않게 되어 어디로 튀는지 그 방향을 알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 마다 멈춰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며 생각과 고민을 하며 번뇌를 거듭합니다. 화면에서 눈을 자극하면 쏟아지는 장면들을 보며 그 속에서 느끼게되는 감정들을 통해 막연하고 모호한 감각들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며 드러나게 됩니다. 흩어진 상상의 조각들을 찾아 맞춰 모호함을 구체화 시키고 감정을 불어넣는데 탁월한 감독이 바로 프랑스 영화의 거장 로베르 브레송감독입니다. 그는 비평가들로부터 그의 영화세계는 장인의 경지를 넘어서 작가로 자리를 잡았다라는 평가를 받는 감독입니다. 소설 백야는 이미 1957년 이탈리아의 거장 비스콘티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 영화는 같은 소설을 각색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와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누가 감독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영화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2. 왜 인생을 완성하는 예술인가

늦은 밤의 파리에서 자크는 거리를 걷던중 그 유명한 퐁네프의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여성 마르트를 구하게 됩니다. 그녀를 설득하여 자살을 막게되고 그것이 인연으로 이어져 만나게 됩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마르트는 어머니와 단칸방에 살면서 하숙생과 사랑에 빠집니다. 그는 명문 예일대에 합격하여 1년 뒤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귀국후에도 연락하지 않습니다. 실망한 마르트를 위해 자크는 대신 편지를 전해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하고 마르트는 점점 자끄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르트는 자끄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두 사람을 키스를 나눕니다. 그런데 우현히도 함께 거리를 걷던 두 사람앞에 바로 옛 연인이 나타나버립니다. 마르트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그에게 다른이게게 호감이 갈 리가 없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밤까지, 남성으로부터 어떠한 연락도 없었고, 약속 장소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마르트의 속은 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크는 마르트를 사랑하게 되었고,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녹음기에 그녀의 이름을 자신의 음성으로 녹음하여,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계속 녹음기를 틀어 놓곤 했습니다. 넷째 날 밤, 다시 만난 자크와 마르트. 마르트는 남성에 대한 기다림이 지쳤는지, 어느 덧 그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한편,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었던 자크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였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퐁네프 다리 주변을 걸었습니다. 이따금씩, 거리의 악사들이 부르는 노래에 귀 기울이기도 했고, 지나다니는 다른 연인들을 바라본 채 두 사람은 서로 포옹을 하며, 사랑을 속삭입니다. 그런데, 길거리를 걷던 하숙생과 마르트가 서로 눈이 마주쳤고, 마르트는 두 사람에게 왔다갔다하면서 얼굴에 키스를 하며, 사랑을 표현하였고, 결국 마르트는 하숙생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집니다. 실연에 대한 슬픔에 빠져있던 자크. 그는 다음날, 작업실에서 일어나, 마르트에 대한 추억과 고마움에 대한 내용을 녹음기에 녹음을 하였고, 녹음된 내용을 틀어 놓은 채, 그려놓은 그림의 색칠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화면이 점점 페이드아웃 되면서 영화는 그렇게 마무리됩니다.

 

3. 몽상가의 나흘밤에 대한 평가

이 영화를 보게되면 시공간적인 배경의 차이도 그렇지만 원작 소설과 영화가 다른 점은 무엇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의 특성입니다. 소설의 장소가 마치 세계에서 분리된 듯한 둘만의 공간이었다고 한다면 영화의 장소는 끊임없이 행인들의 발소리와 자동차 소음이 들려오는 도시의 한복판입니다. 문학은 결코 들려줄 수 없는, 말하자면 영화의 특권인 소리를 <몽상가의 나흘밤>은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음악들처럼, 소리 혹은 소음은 일정한 형식을 통해 그 자체는 사라지고 구조를 남깁니다. 다시 말해 음악이란 소음에 형식이 부여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음악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개념인 사랑은, 어떠한 형식-"물체로부터 존재감을 훔쳐 구분 짓고 떠받치는 공간에 정지시키는 몸짓"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몽상가의 나흘밤>은 무척 씁쓸하면서도 애틋한 대답을 관객들에게 질문으로 들려주고 있습니다.